태풍이 온다고 하면 모든 매체들이 일제히 태풍 이름은 무엇이고, 초속 몇 미터의 강풍을 머금고 있으며 비는 시간 당 얼마만큼 뿌릴지 등을 일제히 보도합니다. 강풍에 대비해서 집의 창문에 종이를 붙이기도 하고 “태풍 온대. 집에 일찍 가자.”하고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물론 태풍 피해를 많이 입고 수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크기는 큽니다. 피해 입은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태풍이 진로를 변경하여 일본 쪽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꽤 자주 듣습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꽤 자주 일어나는 일본으로의 태풍 진로 변경은 무엇 때문일까요?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카르만 볼택스 현상”이고 또 하나는 “설문대할망”이라는 제주도의 신화에 의한 것입니다. 태풍의 진로 변경의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기류 와류 현상인 카르만 볼택스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 창제 신화인 설문대할망 전설인 것이 흥미롭습니다.
태풍 진로 변경의 원인, 카르만 볼택스 현상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다가 그 경로를 갑자기 바꾸어 일본 쪽으로 진로를 바꾸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오늘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일본으로 태풍이 진행 방향, 즉 진로를 바꾸는 현상에는 “카르만 볼택스(Karman Vortex)”의 영향이 있다고 합니다. “카르만 와류”라고도 불리는 이 현상은 둥근 물체 주변의 유체가 불완전하게 분리되는 기류를 발생하는 반복되는 소용돌이 패턴입니다. 섬이나 격리된 산과 같은 방해물을 가로지르는 대기가 종종 카르만 와류를 일으키는데요, 구름층이 해당 고도에 존재할 때 그 와류를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남쪽에서 이 현상이 종종 나타납니다. 아마도 한라산의 존재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상식적인 움직임이 아닌 현상에서 이러한 와류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베컴이 날리는 무회전 슛이나 야구 투수의 너클볼 같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기상청이 무회전 슛과 너클볼 같은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 준 바 있습니다.
아무튼 제주도는 주위에 장애물이나 육지의 높은 지형도 없는 데다가 한복판에 1900미터가 넘는 한라산까지 위치하고 있으니 공기가 한라산과 부딪히면서 양 갈래로 갈라지면서 카르만 볼택스가 일어나기에 적합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기류가 잘 가다가 한라산이라는 쌩뚱 맞은 높은 존재를 만나 통과하면서, 통과 이후에는 꼬불꼬불하게 변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는 흔하지 않은 희귀한 현상이라서 세계 기상학자들도 제주도의 이 현상에 꽤나 관심이 많다고 하네요. 게다가 제주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카르만 볼택스가 발생하는 곳이니 더더욱 그렇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꼬불꼬불하게 생겨난 소용돌이 기류가 태풍을 일본 쪽으로 보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태풍이 자꾸 일본 쪽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이유이자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자연 재해가 자꾸 자기 쪽으로 오니 싫고 무서운 일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음… 🙂
태풍의 진로 변경 원인, 설문대할망
앞서 언급한 내용은 지극히 과학적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 할 내용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로부터 제주의 도민들, 뱃사람들은 설문대할망을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또한 설문대할망이 해녀들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부를 가져다 주는 신으로 여긴 무속 신앙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설문대할망”은 탐라(제주도)를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거인 신입니다. 바다 속의 흙을 삽으로 떠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센 여성신으로 그 설화를 요약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아주 먼 옛날, 태초에 탐라에 제일로 키가 크고 힘도 센 설문대할망이 살았다. 그 할망이 방구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었다. 섬에 불이 붙었고 요동을 치며 굉음을 내었는데, 그 불기둥이 수십리 하늘로 솟아 올랐다고 한다. 할망은 삽으로 바닷물과 바다 밑의 흙을 퍼서 그 불을 끄고, 치마폭에 흙을 더 담아와서 열심히 쌓아 올렸는데 그것이 한라산이다. 그 때 치마 폭 옆과 구멍 등으로 흘린 흙들이 모여 제주도의 여러 오름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할망이 싸는 오줌발이 너무나도 강해서 성산포의 땅이 뜯겨 나갔는데 그것이 소섬이라고 한다. 탐라의 백성들은 할망의 맨드라운 살 위에 밭을 갈고 풍요로웠으며 할망의 털은 풀과 나무가 되어 섬을 덮었다. 할망의 힘찬 오줌에서 온갖 해산물과 해초가 나와 바다도 풍성하게 했으며 그 뒤로부터는 물질하는 해녀도 생겨났다.
할망은 키가 너무 거대해서 옷을 제대로 못 입었는데 헌 치마를 입고는 있는 상태지만, 부끄러운 부분을 가릴 속옷이 없었다고 한다. 항상 탐라 백성들에게 육지로 가는 다리를 놓아주고 싶었던 할망은 백성들에게 자기 속옷을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 약속했다. 그런데 그 속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명주 100통이 필요했지만, 탐라 백성들이 가진 명주를 다 모았을 때 99통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그걸로 속옷을 만들었지만 미완성이 속옷이 되었고 이에 불만족한 할망은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리하여 할망은 육지까지의 다리 놓기를 포기해 버렸고 그로부터 제주는 물로 완전히 막힌 외따로 떨어진 섬이 되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신화”는 이처럼 제가 대략 요약한 것만 읽어도 꽤 재미있는 창제 신화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미난 이야기를 보태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신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일본 신녀 입장에서는 설문대할망이라는 명칭은 모를테니 막연히 한라산에 있는 신, 한라산 여신 정도로 명명할텐데요. 아무튼 그 한라산 여신이 너무 싫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여신이 하늘과 바다와 바람이 만들어낸 악동인 태풍을 죄다 일본 쪽으로 틀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라산의 여신은 일본의 웬만한 신들보다 훨씬 더 강력해서 이것을 어찌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주 밉고 재수 없는 신인데, 자기네들의 입장에서는 어찌할 방법도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한반도로 올라오는 태풍을 막아서는 한라산
카르만 볼택스 현상이 되었든, 설문대할망이 막아주셨든 간에, 한라산의 존재는 우리로써는 참 감사한 것입니다. 태풍이 한반도로 제대로 북상하였을 때, 우리가 입었던 크고 작은 피해들의 옛 경험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다행인 것이지요.
오늘은 한반도로 올라오던 태풍이 경로를 바꾸어 일본 방향으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과학적으로든, 전설적으로든 우리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자연 재해와 안전 점검 및 대책에는 항상 진심으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인자하신 할머니가 우리한테 올라오는 태풍을 향해, “너 이 녀석, 저리 안 가? 훠어이~ 훠어이!”하는 모습도 한 번 떠올려 보며 오늘 포스팅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