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웹툰 원작을 각색한 드라마가 대세입니다. <이태원 클라스>, <미생>, <스위트홈> 등 수많은 성공작의 기반은 웹툰이었습니다. 웹툰을 각색한 드라마는 이 외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다른 영역의 작품을 각색한 드라마는 꾸준히 계속 나올 예정이겠죠. 그런데 그 각색의 시작이 된 것은 아마도 문학 작품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확실한 형태와 색채로 무엇이든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그 내면에 감춰진 의미나 깊이보다 보여지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둡니다. 그것은 시대적 특성이고 나름대로의 독특한 장르 경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문학을 대중들과 가깝게 다가서게 한 것이 영상 예술입니다. 특히 영상 예술은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문학 작품이 활발하게 영화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입니다. 당시 외화 상영권을 얻기 위해 의무적으로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강제적인 법규에 의해 비롯된 것이죠.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기 시작하면서 원작을 더욱 빛나게 한 영화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이 대중 앞에 선보이고 지금까지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계기, 시작점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문학성보다는 영상미와 대중성으로의 변형
각색은 크게 문학 작품에 충실한 것과 문학 작품과 유사한 것, 그리고 변형한 것으로 나뉩니다. 문학 작품은 각색을 거치면서 문학성보다는 영상미를 부각하는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작품이 영상 매체로 옮겨질 때는 무엇보다 대중성을 부각시킵니다. 그것은 문학 작품의 문학성이 대중성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활자 매체에서 전해지는 모호하고 관념적인 색채를 직접 눈으로 보는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활자 매체는 작가와 독자가 폐쇄된 공간에서 1:1로 접하지만 영상 매체는 영화와 그것을 관람하는 많은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서 만납니다. 이러한 장르상의 차이 때문에 문학 작품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되므로 문학 작품은 영상화되면서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니리오나 TV 극본은 영상을 위해 쓰여지는 오리지널 작품과 기존의 작품 즉, 소설이나 희곡, 신문 기사 등을 각색하고 작품으로 분류합니다. 각색은 구조나 기능 형태를 창조할 수 있도록 어떤 것을 변형하거나 적절하게 짜 맞추는 기능성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설을 각색할 때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은 그 특징에 따라 다르게 변화합니다. 단편 소설을 각색할 때는 원래의 이야기를 확대해야 하고, 장편 소설은 압축하고 극화해야 합니다.
대본은 극의 재미를 위해 처음과 중간과 끝이 이어지면서 각 단락의 후반부에 중심되는 사건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미를 잃지 않게 합니다. 단편 소설의 각색인 경우는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장편 소설은 작품의 긴 내용을 전부 영상화 할 수는 없으므로 가장 중시되는 부분에 초점을 두어 재배열하거나 축소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문학 작품은 또 다른 작품으로 재창조됩니다. 그래서 영상물을 관람하는 관객은 새로운 또 하나의 작품을 만납니다. 약간 성격이 다르기는 하나 만화가 원작인 <기생수>가 일본 영화 <기생수>로 재창조된 것이고, 한국의 <기생수 더그레이>는 또 다른 재창물이 되었습니다. 영상물은 문학 작품과는 달리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활자매체가 전하는 감동과 영상 매체가 전하는 감동은 장르상의 특성을 제외하더라도 분명 다릅니다. 우리는 영상을 보면서 재창조된 또 하나의 문학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신 설화와 소설 <꿈>의 관계
조신 설화는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조신의 이야기는 우리 고전 문학의 중요한 모티브로써 비교적 단일 설화이면서 논리적인 체계를 갖춘 점 등 여러 면에서 볼 때 주목할 만한 설화 중 하나입니다. 설화라기보다는 작의적인 요소가 많아 최근에는 그 짜여진 구성과 압축된 주제를 들어 조심스럽게 소설로 수용할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많은 꿈 이야기가 있지만 조신의 꿈 이야기가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야기가 현실에 관한 알레고리적 요소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승려의 깨달음의 과정을 구현한 것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교훈을 주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화소 단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파트
- 승 조신이 세규사 장사의 관리인이 되다.
- 태수 김혼공의 딸을 사모하여 낙산 대비전에 가서 인연 맺기를 빌다.
- 수년 후에 김씨 낭자가 출가하다.
- 불당에 가서 부처님을 원망하며 울다 지쳐 잠깐 졸다.
B파트
- 꿈에 김씨 낭자가 찾아와서 동혈의 짝이 되기를 청하다.
- 함께 향리로 돌아가서 40여년을 살고 자식 다섯을 두다.
- 영락하여 가솔을 이끌고 떠돌아 다니면서 걸식하는 신세가 되다.
- 10년간 초야에서 떠도는 신세가 되다.
- 명주 해현령을 지날 때 15세 된 큰아들이 굶어 죽어 땅에 묻다.
- 우곡현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을 짓고 살다.
- 부부가 늙고 병드니 10세 딸이 구걸하여 먹이다.
- 딸이 마을 개에 물려 신음하며 드러 눕게 되다.
- 부인이 탄식하고 창졸히 이별을 제안하다.
- 조신이 크게 기뻐하며 아이 둘 씩 데리고 아내와 헤어져서 길을 떠나려 하다.
C파트
- 문득 꿈을 깨다.
- 아침이 되니 밤 상에 백발이 되다.
- 백년 신고에 싫증이 나고 탐염하는 마음이 사라져 참회하기를 마지 않다.
-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돌미륵이 나오다.
- 돌미륵을 부근 절에 봉안하다.
- 장사의 소임을 그만 두고 사재를 기울여 정토사를 창건하다.
- 부지런히 백업을 닦다.
-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다.
결국 조신의 이야기는 꿈을 통하여 조신은 자신의 욕망이 결국 고통과 우환의 근원이 되고 말았음을 깨닫게 된다. 불교의 공(空)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 <꿈>
이광수의 소설 <꿈>을 화소별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 조신이 김태수의 딸에게 꽃을 꺾어준 후 흠모하게 된다. 달례가 화랑 모례에게 시집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된 조신은 용선 대사를 조른다. 용선 대사는 그를 관음전으로 데리고 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소망을 이룰 거라고 한다. 조신은 관음전으로 자신을 찾아 온 달례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패물을 가지고 함께 도망가기를 청한다.
- 산중도피 중 평목을 만난다. 평목은 화랑 모례가 아직도 조신을 찾아 다닌다고 전하고 고발하지 않는 대신 조신의 딸 달보고를 요구한다. 이에 격분한 조신은 평목의 목을 졸라 죽이고 숲 속 굴 안에 숨긴다. 서울에서 귀인이 내려오매 고을 사또가 조신의 집에 그의 사저를 준비하라는 명을 내린다. 손님과 사냥을 갔다가 사슴이 굴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통에 평목의 시신이 발견된다.
- 서울 손님이 바로 자기를 찾아 다니는 화랑 모례인 것을 알게 된 조신은 밤중에 가족을 이끌고 도망하던 중 미력이 열병으로 죽는다. 그리고 모례에게 붙잡힌다. 감옥에 들어가 처형일이 되어 형장으로 붙들려 나가 두려움에 떨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일연이 조신 설화에 강고한 뼈대를 세웠다면 이광수는 이 뼈대에 풍만한 살집을 붙여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화에 없던 모례 화랑과 용선 대사, 평목을 등장 시키고 이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켜 흥미를 배가한 것입니다.
다음은 앞서 언급한 “부인이 탄식하고 창졸히 이별을 제안하는” 부분의 내용입니다.
내가 처음 낭군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이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의복도 많고 화려하였습니다. 함께 산 지 50년에 정이 이를 데 없이 깊어졌으며 사랑도 아기자기하여 두터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 쇠약해져 생긴 병이 날로 더하고 기한이 날로 닥쳐오니 곁방살이와 보잘 것 없는 음식도 남에게 빌어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홍안교소는 풀 위의 이슬처럼 날아가 버렸고 지란과 같은 백년가약도 버들꽃이 바람에 불리어 날아가 듯 하였습니다. 그대는 나 때문에 괴로움을 받고 나는 그대 때문에 근심이 되니 가만히 옛날의 기쁨을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그것이) 바로 우환의 발단이었습니다.
<조신 설화> 중에서
설화에서 조신을 괴롭힌 것이 생활고라면 소설에서는 죄책감과 두려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화 속의 김씨녀가 세속의 잣대로 잴 수 없는 보살행의 화신이라면, 소설 <꿈>의 달례는 상징적인 도덕 관념의 소유자로 인식됩니다. 설화가 불교적 공(空)사상과 관음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면 소설은 그러한 신앙을 범 종교적 도덕 의식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어서 소설<꿈> 에서 영화<꿈>으로의 변화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