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욱 감독의 <꿈>은 1955년 서울영화공사 제작으로 흑백영화입니다. 그리고 12년 뒤인, 1967년 신 필림 제작으로 컬러 영화인 <꿈>이 재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배창호 감독의 <꿈>도 발표됩니다. 오늘 각 영화를 비교해 보고 그 서사 구조에 대해서도 알아 보겠습니다.
1955년의 <꿈>
원작에 비해 단순하고 극적인 서사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관음전에서 기도하다 담이 드는 대목까지는 원작과 동일합니다. 달례가 도망한 후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골간을 이룹니다. 뒤쫓아온 달례의 정혼 남자인 모례 화랑의 추격에 의해 두 사람은 모두 죽고 맙니다. 추격에 지친 달례가 먼저 죽자 분노한 모례른 조신을 칼로 베는데, 그 순간 조신은 꿈에서 깨어 납니다. 영화 줄거리를 모례와 조신 간의 추격전에 맞춤으로써 세 남녀의 삼각 관계를 강조하며 고전 멜로물의 전형적인 패턴을 드러냅니다. 자연히 원작이 갖고 있던 주제 의식은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1967년의 <꿈>
소설에서와 달리 조신의 거처가 마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설정됩니다. 이는 ‘금지된 사랑’을 나타내는 설정입니다. 마지막 처형 장면은 모례 화랑에 의해 전격적으로 집행됩니다. 이는 ‘원수에 대한 보복’으로 해석됩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성취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신의 ‘꾸’ 속 서사구조를 삼각관계와 연애담으로 변화시키는데, 등장인물의 성격 면에 있어 영화 속의 달례는 다분히 이중적인 성격으로 묘사됩니다. 조신과의 숙명적인 사랑과 그로 인한 좌절을 묵묵히 받아 들이는 여인으로 등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기 욕심을 따라 남자를 유혹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남자를 따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이 보이는 요부형으로 묘사됩니다. 영화 전반부에 달례가 한밤 중 숲 속 개울에서 목욕하는 장면으로 조신을 유혹하고, 세도가의 신분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궁핍한 생활을 묵묵히 꾸려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목이나 모례 화랑이 나타났을 때 달례는 또 한 번의 성격 변화를 보여줍니다.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뻐하며 미소짓습니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소설과는 매우 상반된 것입니다.
1990년, 배창호 감독의 <꿈>
1990년 태응 영화사에서 제작하고 각본은 배창호, 이명세가 맡았습니다. 조신 역은 안성기, 달례 역은 황신혜, 모례 역은 정보석, 평목 역은 박종원이 맡았습니다. 기승전결로 나누어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 조신이 지친 몸을 이끌고 눈 쌓인 겨울 산사를 찾습니다. 미모를 극찬하여 말하길 두견새가 하얀 비단폭에 피를 토할 듯한 미모라고 합니다. 달례의 미모에 관한 이야기 도중 조신은 썩은 나무토막 같이 보인다하니 큰스님은 곱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참선하는 조신, 달례로 인한 번뇌를 관음전에 아뢰며 귀축생도에 가도 좋으니 연분을 맺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달빛 속에서 달례의 환영을 보고 미친 듯 달례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조신은 달례가 목욕하는 곳으로 잠임해 범하게 되고 새벽 어스름 두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납니다.
[승] 시장에서 염색공장과 포목전을 벌입니다. 달례는 포목전 점원과 불륜을 일삼습니다. 평목이 찾아와 달례를 능룍하려 하고 조신은 그 현장을 목격하고 그를 죽이게 됩니다. 모례 화랑이 시장에 나타나고 산속까지 모례와 조신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궁핍한 살림으로 아들 미력이 음식을 훔쳐 먹다가 사람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조신은 아편 중독자가 되고 달례는 창부가 됩니다. 문둥병에 걸린 달례가 죽고 승려가 된 딸이 그 시신을 수습합니다.
[전] 조신에 의해 추격전 중에 애꾸가 된 모례, 동상에 걸린 손가락까지 잘라내며 조신을 쫓습니다. 조신을 찾은 모례 앞에 목을 내어 놓습니다.
[결] 지친 조신이 불당으로 들어가 참회하고 쓰러져 잠이 듭니다. 아침, 잠에서 깬 후 모두가 꿈이었음을 알게 되고 김태수 일가가 예불을 마치고 하산합니다.
신상옥 영화와 배창호 영화의 차이점
배창호의 <꿈>의 무대는 산속이 아니라 시장입니다. 사랑이 결코 현실이나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사랑이 생활과 분리되는 것은 연애 소설이나 통속 멜로물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생도 연애 소설도 아니고 멜로물도 아닙니다. 사랑도 결국 생활 속에서 영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배창호의 <꿈>은 통속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배창호 감독 속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 일정한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조신은 승려에서 사업가로 성곡하고 달례의 폐물을 밑천으로 염색공장과 포목전을 내어 부유한 상인도 됩니다. 변칙적이기는 하나 사랑도 얻었고 자식도 얻었습니다. 겉보기에는 행복을 얻은 것입니다. 허나 끊임 없이 고뇌합니다. 이광수나 신상옥의 <꿈>에서는 평목의 등장 이후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배창호 영화에서는 외부 자극 없이 내면적 고뇌를 안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의 파괴에 대한 보응으로 아내의 부정을 묵인하고 자신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로 받아들입니다. 달례는 조신의 영혼의 그림자입니다. 그녀이 이름이 달(Moon)례인 것처럼 영화 전편에 걸쳐 밤하늘을 가득 채우며 은은히 빛나는 보름달은 그녀의 이미지입니다. S#4의 법당 앞 달빛 속에서 달례의 모습을, S#10에서 죽은 평목이 조신을 찾아 왔을 때 그 오두막에 커다랗게 떠있던 둥근 달의 이미지는 조신의 그리움이며 슬픔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S#6에서의 달례의 부정한 장면은 남편에 대한 무언의 징계이며 조신의 암울한 그림자로서의 이미지입니다.
모례 화랑의 성격적 변모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춘원의 소설에서는 모례는 의지적이고 이상적인 화랑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귀공자이며 도덕론자이지요. 신상옥의 모례는 달례에 대한 사랑과 조신에 대한 증오심으로 강조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배창호의 모례는 사뭇 낭만적입니다. 그는 달례를 되찾기 위해 애꾸가 되는 것도 마다 하지 않고 동상으로 얼어버린 손가락 절단까지 불사합니다. 달례에 대한 사랑이 지순하여 희생적인 모습까지 보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설화와 소설과 영화는 비록 매체는 달리하지만 동일한 서사체로서 한 테두리 안에 존재합니다. 그것들은 다 같이 이야기를 가진 장르입니다. 설화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게 하고, 소설은 읽게 하고, 영화는 보게 합니다. 어떤 유형으로 전달되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 듣거나 읽거나 봄으로써 이야기를 향유하게 됩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셋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또 달리 생각한다면 이 셋은 엄연히 다릅니다. 듣는 것과 읽는 것, 보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들은 이야기를 다시 글로 읽고 또 이미 읽은 이야기를 다시 영화로 봅니다. 웹툰 <신과 함께>를 봐 놓고 또 영화를 보고,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어 놓고도 드라마 <난쏘공>을 또 봅니다. 관객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소설과는 뭔가 다른 차별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영화에서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소설에서 영화를, 영화에서 소설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영화는 영화적 방식으로 이야기 해야 합니다. 영화 작업은 우선 기존 문학 텍스트를 파괴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원작의 줄거리를 과감히 탈피하여 새로운 영상 이미지를 보여준 배창호의 영화에서 이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학 텍스트를 파괴할 때 오히려 영화가 문학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되 영화적 방식으로 할 것, 각색 단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적 서술체를 지향할 것, 이것이 문학과 영상미학의 조화를 이루는 최선이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