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작가 중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젊은 시절 여러 교육을 받은 바 있습니다. 협회 교육도 받아 봤고 드라마에 대한 연구도 제법 많이 했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한국 시장에서만 소비되는 콘텐츠였다면 지금은 전 세계로 한국의 콘텐츠가 뻗어 나가고 그야말로 K 드라마, K 무비의 시대입니다.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 플러스, 티빙 등등 수많은 채널이 마련되어 있고 한국 콘텐츠는 끊임 없이 세계인들의 눈 앞에 놓일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 드라마 작법에 대한 것을 하나씩 포스팅 해 보겠습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작게 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라마의 속성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 마음의 북소리를 따라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감동’은 내 마음의 북소리를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는 이유이며, 드라마의 속성으로는 우선적으로 ‘재미’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재미가 드라마의 본질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Drama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선택이나 행위, 또는 그것의 결과’라는 의미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드라마는 행위를 전제로 이루어지고 행위가 있으면 반드시 갈등이 존재합니다. 드라마에 있어서 갈등은 추진력이자 엔진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을 통해서 재미를 줘야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한 번의 시도로 성공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작가는 아주 심술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권력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권력이란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권력입니다. 작가에게는 그 권리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흡인력과 소도구
요즘은 더더욱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통칭 영상 드라마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 드라마의 흡인력은 톱스타 혹은 캐릭터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강건한 서사 구조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왜곡된 캐릭터 드라마는 오히려 작품을 망칩니다.
소도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리드해 나갑니다. 영화 <모로코>의 빨간 구두, <토파스>의 교육 훈장, 산업 훈장, <장발장>의 은촛대, <007>의 가방 속 소도구들. 모두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007>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저 위기에서 시계 꺼낼거야!’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작가는 성공한 것이지요. 허나 관객의 비판이 나온다면 실패입니다.
소도구 찾기 연습
영화 <스네이크 가이즈>를 보며 14분 25초대의 롱테이크를 찾아보고, 소도구를 이용한 주인공의 변화 포인트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소도구를 이용한 복선이 있는데, 어떤 소도구인지도 찾아 봅시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도구에 대해서 평소에도 많은 생각과 고민, 새로운 아이디어 등을 늘 기억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시청자가 느끼는 우월감, 그리고 누설과 인식
시청자가 작품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작품에 편승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기서 ‘누설’과 ‘인식’의 개념이 나옵니다. 누설은 등장인물은 모르고 관객만 알고 있도록 하는 것이고, 반대로 인식은 등장인물과 관객 둘 다 모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격과 surprise는 3~5 초 정도의 효과는 있겠으나 누설과 인식의 효과는 10분으로 월등하게 강합니다. 시청자가 알고 있다는 우월감과 시청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한 작법으로 시청자를 작품에 동참 시키는 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착해 보이는 남자 악역의 호주머니 속에 칼이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압니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여자 주인공은 그걸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이게 누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관객들은 몰랐던 정전이 되어버리고 작품 속 남자 악역과 여자 주인공도 그 갑작스러운 정전과 암흑에 당황합니다. 이럴 때는 인식이겠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경성크리처>라는 작품도 이 누설과 인식을 아주 적절하게 잘 이용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괴물이 지하 감옥에 있음을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은 모릅니다. 괴물이 궁금해서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괴물을 인물들이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극복할지 그것이 궁금해서 작품에 몰입하게 되는 면이 큽니다.